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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의 진실을 찾아서 [조선일보]

[고대사의 진실을 찾아서] [3] 고조선 강역 논쟁

by 국강상 2021. 3. 23.

'패수'… 대동강부터 난하까지 해석 다양

이선민 선임기자

입력 2016.04.13 03:00

 

 

 

 

고조선의 영역에 대한 다양한 학설은 고조선의 주요 지명 이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은 '패수(浿水)'였다. 패수는 옛 연(燕)나라 땅에 살던 위만이 고조선에 망명할 때 건넜던 강이고, 한나라 무제가 고조선을 침공할 때 두 나라 군대가 격전을 벌였던 장소였다.

'수서(隋書)' '신당서(新唐書)' '통전(通典)' 등 중국 역사서들은 패수를 대동강으로 보았다. 이는 북위 시대 역도원이 쓴 지리서 '수경주(水經注)'에 고구려 사신의 말이라며 "평양성은 패수의 북쪽에 있다"고 한 것에서 비롯됐다. 반면 우리나라 학자들은 패수의 위치를 다양하게 비정했다. 정약용은 압록강설(說), 대동강설, 요동설 등 여러 설이 있다고 언급한 후 압록강설을 지지했다. 근대에 들어 이병도는 청천강으로 비정했다. 패수를 한반도 밖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었다. 신채호와 정인보는 패수가 요동 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북한 학자들은 '수경(水經)'에 "패수는 낙랑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고 돼 있는데 요동·요서 지역에서 이에 부합되는 강은 대릉하밖에 없고, 한나라 때 누방현이 대릉하 부근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윤내현은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이 지금 난하 부근에 있던 고대 요동군이었다며 패수를 난하로 비정했다.

고조선의 도읍이었던 '왕검(王儉)' 또는 '왕험(王險)'에 대해서는 평양설과 요동설이 대립한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학자는 왕검성을 평양으로 이해했다. 북한 학계는 한나라 때 요동군에 속했던 험독(險瀆)을 왕검성으로 비정하고, 오늘날의 요령성 개평 지방이 그곳이라고 주장했다. 고조선 중심지가 요동에서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했다고 보는 학자들은 왕검성 역시 요하 동쪽에서 평양으로 옮겨졌다고 이해한다.

공동 기획: 한국고대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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