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 왜 나왔나
입력 2016.06.15 03:00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正史)로 덴무(天武·재위 673~686) 일왕의 명에 따라 680년 무렵 편찬이 시작돼 720년에 완성됐다. 일본의 신화 시대부터 덴무 일왕의 부인이자 후임자인 지토(持統·재위 686~697) 일왕까지의 역사를 기록했다. 일본의 정부 공식 기록, 민간 전승 기록과 함께 외국 역사서도 이용했는데 한국 관계 기록은 '백제기(記)' '백제본기(本記)' '백제신찬(新撰)'에 크게 의존했다.
일본서기는 국가가 편찬했지만 초기와 대외 관계 기록은 믿기 어렵다는 평을 받는다. 이는 7세기 말엽이 '일본' 국호와 '천황' 호칭이 시작된 시대로 일본이 주변국에서 조공을 받았다는 소중화 의식이 형성됐고, 이를 역사 서술에 투영해 사실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가 오래됐음을 강조하기 위해 사건 연대를 120년 끌어올렸다는 '이주갑인상설(二周甲引上說)'까지 제기된다.
야마토 정권이 임나(가야)를 지배했다는 일본서기의 서술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1720년 쓰인 대일본사(大日本史) 임나전이 일본서기의 관련 기사를 재정리해 수록하면서 일본 역사의 한 부분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19세기 말~20세기 초 일군의 역사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학문적이기보다는 일제의 한국 침략을 역사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임나일본부설은 1949년 출간된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의 '임나흥망사'에서 집대성됐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 학계는 일본서기의 사료적 한계를 인정하고 임나일본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이후 임나일본부가 임나의 여러 세력과 왜(倭)가 함께 참여했던 회의체라는 주장, 527~530년 일시적으로 존재했던 군사 기관이라는 주장 등이 나왔다. 결국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200년 동안 지배했다는 학설은 무너졌고, 2010년 한일역사공동위원회는 임나일본부설이 근거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동 기획: 한국고대사학회
'고대사의 진실을 찾아서 [조선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대사의 진실을 찾아서] [12·끝] 고대 韓·日 관계의 실상 (0) | 2021.03.24 |
---|---|
[고대사의 진실을 찾아서] 백제 왕세자가 倭王에 만들어준 칠지도 (0) | 2021.03.24 |
일본서기에만 23회 등장… 통치기관 흔적 없어 (0) | 2021.03.24 |
[고대사의 진실을 찾아서] [10] 백제의 '요서' 경략설 (0) | 2021.03.24 |
[고대사의 진실을 찾아서] 1880년 재발견 전까지 금나라 유적이라 여겨 (0) | 2021.03.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