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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조문국 사적지

국강상 2020. 3. 30. 03:49

15.05.01

 

의성 조문국 사적지

 

召文國史蹟

소문국사적지

 

옛날에 세운 비석이다. 요즘은 조문국이라고 불리고 있다.

 

 

의성 조문국 사적지

 

 문익점 면작 기념비

 忠宣公富民候江城君三憂堂文益漸先生(충선공 부민후 강성군 삼우당 문익점 선생)

 

 고려말 원 사신으로 가서 목화씨를 붓통에 넣어온 문익점 선생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꺼다. 문익점 선생의 고향은 경남 진주인데 왜 의성인 이곳에 면작 기념비가 세워져 있을까? 그 이유는 그의 손자가 의성현감으로 부임하여 제오리(공룡발자국 동네)에 면화를 파종하여 훗날 지역주민들이 기념비를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흔히 역사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그러나 그냥 흘러간 적이 없다. 문명은 은혜롭게 가져다 준 것도 있고, 열심히 모방해서 따라잡은 것도 있고, 돈 주고 사온 것도 있고, 훔쳐다 쓴 것도 있고, 점령당해 퍼져간 것도 있다.」

 유홍준,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2 아스카·나라 中』

 

문익점 선생이 가져온 목화씨가 위의 예 중에 하나이다. 훔쳐다 쓴 것. 역사란 그러한것이다.

 

의성 조문국 사적지

 의성 금성산 고분군(義城 金城山 古墳群)

 경상북도 기념물 제 128호 / 소재지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원

 

 이 고분군은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원에 소재하며, 전 조문국 경덕왕릉을 비롯한 약 20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인 조문국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조문국은 삼한시대의 소국으로 성립되었으며, 신라 벌휴왕 2(185)에 신라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조문국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기에는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1960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외 경희대, 경북대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앞트기식 내지 굴식돌방무덤과 변형 돌무지덧널무덤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신라토기 가운데 지역색을 강하게 나타내는 의성양식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금동관, 금동관장식품, 금동제귀걸이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함께 철제 무기류, 마구류 등이 있다. 현재 이 유물들은 국립대구박물관과 경북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의성군 금성면 일대는 오랫동안 조문국의 도읍지로 알려져 왔으며, 이 곳에서 소재하고 있는 고분들을 통해 의성지역 지방세력과 사회구조 및 의성지역과 신라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의성 조문국 사적지

  

3호분 뒤로 보이는 무덤이 바로 조문국 경덕왕릉이다.

 

의성 조문국 사적지

 

 1호고분 (경덕왕릉 景德王陵)

 삼한시대 부족국가이던 조문국(召文國)이 이곳에 도읍하여 신라 벌휴왕 2(185)에 신라 문화권에 병합되기 전까지 인근 고을의 넒은 지역을 다스렸던 조문국의 경덕왕은 그 형식이 전통적인 고분으로 봉 아래에 화강석 비석과 상석이 있다. 먼 옛날 외밭이었던 묘역을 발견하고 수호하게 된 되에는 의성현령의 꿈에 의하여 발견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음을 조선 숙종 때 편간된 허미수의 문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현재 해마다 봄철이 되면 한 번씩 관민 일동이 여기서 춘계향사를 지내고 있다.

 

 분구의 둘레가 74m, 높이가 8m이며, 능의 전면에는 가로 42cm, 세로 22cm, 높이 1.6m의 비석이 있다.

 

 경덕왕, 경문왕, 경명왕, 경애왕, 경순왕... 응? 그래 맞다. 신라왕들이다. 어릴적에 탑리에 있는 경덕왕릉을 알고나서는 '아니 저 왕은 왜 경주에 안묻히고 여기까지 와서 묻혔어?'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신라의 경덕왕이 아니다. 그 경덕왕 이전에 그것도 한참전의 부족국가인 조문국의 경덕왕이었을 줄이야.

 

내가 좀 그렇다.

 

 산낙지도 얼마 전까지는 산에 낙지가 사나? 라고 생각을 했으니 말 다했지 뭐.

 

의성 조문국 사적지

2호분은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 처럼 고분전시관으로 만들어 놓았다.

 

의성 조문국 사적지

 

2호분 뒷쪽, 1호분 앞쪽에 위치한 3호분

 

 3호 고분

 평지에 가까운 곳에 조성된 3호 고분은 밑지름이 14.3m~10.7m 내외 높이가 3m 정도였으며, 한 봉분안에 돌무지덧널무덤(1), 덧널무덤(2), 유사돌무지덧널무덤(3)  3기가 순차적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1곽은 길이 5.8m, 너비 3m, 깊이 0.7m, 2곽은 길이 5.3m, 너비2m, 깊이 0.3m 정도로 두 기는 규모가 비슷하고 11자형으로 나란히 설치되어있었다.

 

 1곽에서 금귀걸이, 삼엽문대도, 은허리띠 등 장식품이 주로 출토되었고, 2곽에서는 많은 양의 토기와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의성 조문국 사적지

 

 햐... 진짜 더웠는데 사진은 언제나 그렇듯이 당시와 다르게 따뜻하게만 보인다.

 

의성 조문국 사적지

 

 처음에 저기 전망대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ㅋㅋㅋ 아주머니 한분께서 "저기 ... 혹시 연예인 아니시죠?"

 

 "네?!!!? ㅋㅋㅋㅋㅋ"

 

 막 웃으면서 손사래를 치는데 옆에 남편분의 말씀이 더 재미있으시다.

 "그저 젊고 잘생겨 보이면 말걸고 싶어서 ㅉㅉㅉ"

 

 떡 나눠 주시려는거 아까 아침 겸 점심을 너무 거하게 먹어서 마음만 받았다. 고맙습니다(연예인이라고 해 주셔서 ㅋㅋㅋㅋㅋ 그냥 받아 놓을껄...)

 

의성 조문국 사적지

 

 5호 고분

 규모 : - 20.5mm, - 23.1m, 높이 4.4m / 봉토 경사도 : 25~28도 / 평면형태 : 타원형

 추가장 유형 : 봉토사면의 중/하단을 중심으로 수 회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

 

의성 조문국 사적지
의성 조문국 사적지
의성 조문국 사적지

 

대로변에 망주석이 있는걸로 보아 일반인의 묘도 함께 있는거 같다.

 

의성 조문국 사적지
의성 조문국 사적지

 

 

 항상 드는 생각은 무덤이라는건 공포의 장소가 아닌 포근한 장소라는거.

내가 살기 이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공간.

 

그리고 나 또한 언젠가 저렇게 잠들어 있을테니까.

 

의성 조문국 사적지

 

한바퀴 둘러보다보니 처음의 장소. 오른쪽의 저 나무들은 작약이다. 작약으로도 유명한 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