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행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국강상 2020. 4. 27. 17:57

14.05.18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육신사가 위치한 묘골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의 충절문.

 문 사진 좀 찍자고 '비키라' '비키라' 해도 지지리도 말을 듣지 않는 두 녀석. 절대로 비켜주는 일이 없다 ㅋㅋㅋ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충절문을 지나는 이 장수(?)를 보라 (아 저 깨알같은 뒤에 손짓 ㅋㅋㅋ)

 알프스의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같지 않은가 ㅋㅋㅋㅋㅋ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하빈 묘골마을은 한옥의 복원뿐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가옥에 거주를 하고 있다. 부럽... ​담장가에 활짝 핀 개양귀비 꽃. 한동안 내가 빠져 있던 꽃이기도 하지.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육신사

 육신사는 사육신으로 일컫는 조선 세조 때의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처음 사당을 지을 때는 충정공 박팽년 선생만을 그 후손들이 모셔 제사지냈으나, 선생의 현손인 박계창이 선생의 제삿날 사육신이 함께 사당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뒤부터 나머지 분들의 음식도 장만하여 함께 제사지냈다고 한다.

 그뒤 하빈사(河濱祠)를 지어 이들에게 제사지내다가, 1694년(숙종20년) '낙빈(洛濱)'이란 현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866년(고종3년) 서원 철폐령으로 낙빈서원이 철폐되자 제사를 지내지 않다가 유림들에 의해 그 자리에 사당을 세워 다시 사육신을 봉안해 왔다.

 1974년 부터 1975년 사이에 '충효위인 유적정화사업'에 의해 지금의 육신사를 건립하였으며, 2003년부터 2011년에 걸쳐 충절문을 세우고 전통가옥을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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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의 외삼문(外三門)을 나자 안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홍살문(紅ㅡ門)

 

 홍살문(紅-門)

 홍살문은 능묘나 궁전, 관아 앞에 세우는 붉은 물감을 칠한 나무문으로 중간에는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고, 양쪽에는 화살모양의 나무를 세워 두었다. 경의를 표하하는 뜻으로 신성구역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기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인도의 스투파[탑, 塔] 입구에 세우는 '토라나(torana)'에서 유래했다고 보고 있다. 일본의 도리이, 중국의 패방이 비슷한 경우로 전래되어 고유하게 변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홍살문을 지나면 사육신의 유적비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오른쪽으로는 재택인 고정 숭절당이 있다.

 

 어짐을 이룬다는 뜻의 성인문.​ 내삼문 이라고도 불리는 성인문 안쪽으로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숭정사가 있지만 꽁꽁 잠겨버린 문. 이전에 다녀온 경주 양산재 사당도, 소수서원 문성공묘도, 육신사 내부도 다 잠겨져 있다.

 하긴 고궁 야간개장 했는데 거기서 돗자리 펴고 고기구워 먹는 우리 시민의식을 생각하면 잠구는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제택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태고정(太)

 태고정은 일명 '일시루(一是樓)'라고도 불려서 정자의 정면에 '태고정'과 '일시루' 두개의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는데 정면4칸, 측면2칸의 정교한 초익공계(初翼工系) 구조를 하고 있고, 오른쪽은 팔작기붕, 왼쪽은 맞배지붕에 부섭지붕(서까래의 윗머리를 다른 벽에 지지시켜 달아낸 지붕)으로 마감한 보기 드문 정자 건물이다. 보물 제55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정자는 1479년(성종10년)에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건립한 것이다. 원래는 종가 안에 붙어 있던 별당 건물이었으나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25년)에 불타고 일부만 남아 있었다. 이를 1614(광해군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일자형 건물로, 각각 2칸씩 대청마루와 방을 꾸몄다. 대청 앞면은 개방되어 있는데 대청 앞 기둥 사이에는 2층으로 된 난간을 설치하였다. 서쪽에는 온돌방과 부억을 마련해 놓았는데 단순한 아궁이가 아닌 부억을 둔 것으로 흔치 않은 것이다.

 

 태고정은 그 규모가 크기는 않으나 가구나 세부가공이 정교한 편이며, 조선 전기의 건축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적인 가치가 크다.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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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ㅋㅋㅋ

 

 ​우리가 잠시 까불며 지나간 이 건물은 숭절당(崇節堂)으로 숭정사 앞에 제사에 소요되는 건물로써 안채 하나와 사랑채 둘로 구성되어 있으나 모두 100년을 넘지 않은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다.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도곡재(陶谷齋)

 도곡재는 1778(정조2년) 대사성인 서정공 박문현이 제택으로 건립한 건물이나 1800년대에 와서는 도곡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되면서 그의 호를 따 도곡재라 이름하였다. 박종우는 인조때의 사람으로 문장, 정의, 덕행을 모두 겸비하여 동한(東閑)의 일인자라 칭송 받았으며 달성십현(達城十賢)의 한 사람이다. 

 

​ 도곡재는 원래 정면 4칸, 측면1칸의 건물로, 태백산 지역 제택의 일반적인 사랑채 형태인데 후대에 와서 툇간을 달아내고 대청을 넓혀 누처럼 꾸몄으며, 각 방의 후벽에는 개흘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네모기둥을 세우고 납도리를 돌린 팔작집의 소박한 구조의 건물이다.

 ※ 제택 : 살림집과 정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예쁘다.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도곡재 반대편에 위치한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전통한옥마을의 모습. 그러고보니 대구도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옥마을이 있는셈이다.

 

[대구] 하빈 육신사, 자그마한 대구의 한옥마을

 

 피어나는 초록잎사귀와 파란하늘이 아름다운 5월의 봄. 그리고 6년 전의 조금은 어렸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