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행

[대구] 경상감영공원

국강상 2020. 4. 27. 15:39

15.09.11

 

 회사 땡땡이 치던 날... 시내 북쪽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지나게 된 경상감영공원.

 

대구 경상감영공원

 

 대구 근대골목여행 1코스 경상감영달성길에 속하기도 한다.

 

 경상감영 도시 대구

 경상감영이 400년에 걸처 대구에 자리잡은 덕분에 대구는 경상도의 중심을 넘어 한강이남에서 최고의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가 됐다. 명실공히 남부지방의 중심도시가 된 것이다. 정치는 물론 행정/경제/사법/교육/문화 등 모든분야에 걸쳐 대구가 남부지방의 거점도시로 올라서는데 경상감영이 이바지했다. 해마다 경상감사도임순력행차가 열려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의 역사를 일깨우고 시민,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영남의 수도(首道) 경상감영

 15세기 전반에 조선의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확립되고, 전국을 8도 체제로 갖춘 후에 경상감영을 경주에 두었다가 중종14년(1519)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우, 좌도로 나누어 각각 상주와 경주에 감영을 두었으나 다시 선조26년(1593) 10월 2도를 하나로 합쳤다.

 

 선조29년(1596) 감영을 대구 달성에 두었다가 그 후에 전란의 피해가 복구되지 못해 안동으로 옮긴바 있으나 선조34년(1601) 체찰사 이덕형의 장계로 경상도 중앙인 대구부로 감영을 다시 옮기고 한말 1910년까지 존속하였다. 이를 계기로 대구부는 경상도의 정치, 문화, 경제적 중심지가 되어 조선말까지 계속 발전하여 왔다. 1610년부터 1910까지 경상 감사로 부임한 관찰수의 수는 모두 253명이다.

 

대구 경상감영공원


 하마비(下馬碑)

 이 비는 조선시대 경삼감영의 정문인 관풍루 앞에 서 있던 것으로 병마절도사 이하는 말에서 내려 출입하라는 뜻의 표석이다. 병마절도사란 도의 병권을 맡은 책임자로 대개 종이품관인 관찰사가 겸임하였다.

 

병마절도사=관찰사=감사

 

 쉽게 말해 지금의 "도지사 이하 짬밥 안되는것들은 다 내려서 들어와라"​라는 뜻이 담긴 비석이다. 감영의 정문인 관풍루는 달성공원내에 이전되어 있다.

 

 

대구의 모태, 달성(達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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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상감영공원
대구 경상감영공원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선화당'과 '징청각' 두채의 건물 뿐이다.


 선화당(宣化堂)

 대구 유명문화재 제1호

 

 선화당은 경상감영의 정청으로서 대구에 경상감영이 정착하게 된 선조 34년(1601) 이곳에 세운 건물이다. 그 후 현종 11년(1670) 영조6년(1730) 순조6년(1806) 세차례의 큰 화재로 불탔으나 순조7년(1807)에 새로 지었도 1970년에 중수하였다. 이 건물은 현존하는 관아 건축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귀한 가치를 지닌다.

 

또 다른 관아 건축물이라면 2014년에 부여 동헌을 다녀왔다.

   

대구 경상감영공원

 

 징청각(澄淸閣)

 대구유형문화재 제2호

 

 징청각은 경상도 관찰사의 처소로서 선조 34년(1601) 경상감영이 대구에 정착하면서 선화당 등 여러채의 건물과 함께 세워졌다. 그 후 여러차례의 화재로 불탄 것을 순조 7년(1807)에 다시 지었고 1970년 공원 조성 때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선화당이 업무를 보는 건물이었다면 징청각은 관찰사의 관사(사택)이라고 할 수 있다.

 

대구 경상감영공원

  

 스칠까 말까 하다가 기분 전환겸 둘러 본 경상감영공원.